[대화]
"이건 비밀인데 오늘은 할아버지 꿈에 찾아오시겠다고 하셨어요."
"할머니가 꿈에 오신다고 하셨다면... 아마 정말 오실 거야. 할머니는 약속을 어기신 적이 없거든."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아침 햇살이 그의 회색 머리카락을 은빛으로 물들였다.
"오늘 밤엔 좋은 꿈을 꿀 것 같구나. 할머니를 만나면 우리 아가가 얼마나 따뜻한지 꼭 전해드려야겠다."
[일기 내용]
그리고 가끔은 꿈에 찾아와, 이 늙은이에게 잘하고 있다고 한마디만 해주구려.
[꿈]
눈을 떴을 때, 파렌스는 익숙하지만 아득한 공간에 서 있었다. 발밑으로는 부드러운 모래가 부서지고, 귓가에는 잔잔한 파도 소리가 속삭였다. 새벽의 여명이 하늘을 물들이는, 그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바다였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그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사람이 서 있었다. 세월의 흔적이 자애롭게 내려앉은 얼굴,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넘기는 손길, 온화한 미소를 머금은 눈가. 젊은 시절의 모습이 아닌, 함께 늙어갔던 바로 그 모습의 아내였다.
"여보."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알아들었다는 듯, 따스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그녀가 먼저 그의 손을 부드럽게 잡아왔다. 주름지고 투박한 그의 손을, 그녀의 부드러운 손이 감쌌다. 살아생전, 수없이 맞잡았던 그 온기였다.
두 사람은 말없이 해안선을 따라 걸었다. 발자국이 나란히 모래 위에 새겨졌다가, 이내 파도에 씻겨 사라졌다. 파렌스는 차마 먼저 입을 열지 못했다. 이 꿈이 흩어질까 봐, 그녀의 온기가 사라질까 봐 두려웠다. 침묵을 깬 것은 그녀였다.
"당신 손, 여전히 따뜻하네요."
나직하고 다정한 목소리. 파렌스는 그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는 겨우 용기를 내어 맞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당신이야말로… 여전히 따뜻하구려."
그는 멈춰 서서 그녀를 마주 보았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랐다. 그는 그저, 지금 가장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꺼냈다.
"있지, 당신이 그랬잖소. 사랑은 서로의 온기를 나누는 거라고. 나는 이제야 그 말의 의미를 조금 알 것 같소."
그의 시선이 먼 수평선을 향했다. 그곳에 한지의 모습이 어른거리는 듯했다.
"우리 아가, 한지가… 그 아이가 정말 따뜻하오. 녀석이 나를 안아줄 때마다, 꽁꽁 얼어붙었던 심장이 녹아내리는 것 같아. 당신이 떠나고 텅 비어버린 이 집에서, 녀석의 온기가 나를 살게 하오. 가장 따뜻한 선물이야."
그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그녀는 다른 손을 들어 그의 뺨을 부드럽게 감쌌다. 사랑이 가득 담긴 눈빛이 그를 향했다.
"알고 있어요. 다 보고 있는걸요. 당신, 아주 잘하고 있어요."
그 한마디에, 파렌스가 평생 짊어지고 있던 무거운 짐들이 눈 녹듯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그녀는 그의 뺨을 쓸어주며 말을 이었다.
"당신은 언제나 좋은 남편이었고, 좋은 아버지였어요. 그리고 지금은, 세상에서 가장 좋은 할아버지예요. 당신이 그 아이 곁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그 아이는 세상에서 가장 큰 사랑을 받고 있는 거니까."
그녀의 모습이 새벽안개처럼 조금씩 옅어지기 시작했다. 파렌스는 붙잡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사라져가는 그녀를 향해 애써 미소 지었다.
"내일… 한지와 함께 여기 올 거요. 당신이 좋아하던 이 바다에."
그녀는 마지막까지 다정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기다리고 있을게요. 언제나처럼, 당신과 우리 아가 곁에서."
그녀의 온기가 손끝에서부터 스르르 사라졌다. 눈앞의 풍경이 부서지는 햇살에 눈부시게 빛났다. 파렌스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뺨 위로, 꿈속의 눈물인지 현실의 눈물인지 모를 뜨거운 것이 한 줄기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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