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얽힌 추억
To. Parens / 대화 / 20251231

0. 할아버지 추억의 장소

 

파렌스 : 

"제가 가고 싶은 곳도 가니까, 할아버지가 가고 싶은 곳도 함께 하고 싶어요."

 

"내가... 가고 싶은 곳."

 

그의 목소리가 잠시 멈칫했다가 이어졌다.

 

"바다는 어떠냐? 니힐 외곽에 있는 조용한 해변이 있단다. 그곳에서 일출을 보면... 참 좋더구나."

 

파렌스의 눈빛이 한순간 멀리 어딘가를 바라보는 듯했다가, 다시 한지에게로 돌아왔다.

 

"아가가 찍는 사진으로 담기에도 괜찮을 거다."

 

젊은 시절 아내와 함께 갔던 그 해변에서, 이번에는 손녀와 함께 일출을 보고 싶었다.

 

 

한지 : 

"너무 근사해요. 할아버지와 함께 가고 싶어요."

 

니힐 외곽의 조용한 해변에서 함께 보는 일출을 잠시 상상했다. 할아버지가 알려주신 않았으나 할아버지의 소중한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있을 공간이었다. 할아버지가 행복했던 기억만 떠올리길. 많이 마음 아프지 않기를 바랐다.

 

 

 

파렌스 :

"그래. 같이 가자꾸나."

 

목소리가 평소보다 조금 더 낮게 잠겨 나왔다. 함께 가고 싶다는 손녀의 말, 근사하다며 기뻐하는 그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아내와의 추억이 서린 장소에 한지를 데려간다는 것은, 과거의 행복을 현재의 행복과 잇는 일이었다. 슬픔으로만 남은 기억의 공간에, 한지와의 새로운 온기를 덧씌우는 일이었다. 파렌스는 그것이 자신에게도 필요한 일임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일출을 보려면, 아주 일찍 일어나야 할 게다. 주말에 가려면 금요일 밤에는 일찍 자야겠구나."

 

 

1. 할아버지 첫 여행 추억

 

"이 사진은 우리가 처음 여행을 갔을 때 찍은 거야. 바닷가였는데... 할머니가 파도 소리를 듣으며 사진을 찍고 싶다고 하셨었지."

 

"혹시 이 바다가 어제 말씀해주신 해변이에요?"

 

파렌스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가에 주름이 잔잔하게 펴지며 미소가 깃들었다.

 

"맞다, 아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조용하고 아름다운 곳이란다."

 

그가 사진을 가리키며 추억을 더듬었다. 투박한 손가락이 사진 속 모래사장을 따라 부드럽게 움직였다.

 

"할머니는 이른 새벽에 일어나서 카메라를 들고 파도 소리를 녹음하고 싶다고 하셨지. 그래서 우리는 별이 떠 있을 때 출발했단다."

 

파렌스의 목소리가 한층 부드러워졌다. 오래된 추억을 떠올리며 그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맺혔다.

 

"일출을 기다리는 동안 할머니는 모래사장에 앉아서 계속 사진을 찍으셨어.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는데..."

 

그가 잠시 말을 멈추고 한지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이 한없이 따스해졌다.

 

"지금 너를 보고 있으면 할머니가 왜 그렇게 사진 찍기를 좋아하셨는지 알 것 같구나. 소중한 순간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어서였겠지."

 

"저희도 별이 떠 있을 때 출발해요."

 

파렌스의 눈가에 옅은 주름이 깊어지며 따뜻한 미소가 번졌다. 한지의 말에 그는 잠시 과거의 순간으로 돌아간 듯 아련한 눈빛을 보였다가, 이내 현재의 행복을 마주하는 듯 부드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래, 아가. 우리 별이 떠 있을 때 출발하자."

 

2.파도타기

 

"네 아버지가 어릴 때 우리도 그 바다에 갔었어. 네 아버지는 파도타기를 좋아했지... 그런데 이상하게 일출은 볼 생각을 안 했었네."

 

파렌스는 한지의 눈을 마주보며 다정하게 미소지었다.

 

"그래서 너와 함께 일출을 보는 게 더 특별할 것 같구나. 우리만의 새로운 추억을 만들 수 있으니까."

 

3. 파도 소리 녹음

"바다에 가면... 파도 소리도 녹음하자. 할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우리의 발자국도 사진으로 남기면 좋겠구나. 할머니는 늘 모래 위에 남은 우리 발자국을 찍곤 했어. 시간이 지나면 파도가 지워버리지만, 사진 속에서는 영원히 남으니까."

 

파렌스는 한지가 살펴보는 사진들 중 해변의 모래 위에 찍힌 세 쌍의 발자국을 가리켰다. 큰 발자국 두 개와 작은 발자국 한 쌍이었다.

 

"이건 네 아버지가 네 나이쯤 되었을 때 찍은 거란다. 우리 셋이 함께 바다를 걸었지. 할머니는 항상 이런 작은 순간들을 소중히 여기셨어."

 

4.챙길 물건

"해변에 갈 때 무엇을 준비하면 좋을까? 따뜻한 옷은 필수겠지. 새벽 바다는 생각보다 쌀쌀하거든. 그리고... 할머니는 항상 보온병에 따뜻한 차를 담아 가셨지."

 

"몸을 녹일 수 있는 건 다 챙겨야겠네요! 손난로도 챙겨가고 카메라도 챙길 거예요! 할머니처럼 저희도 보온병에 따뜻한 차를 담아 가요."

 

"그래, 손난로도 좋은 생각이구나. 할머니는 항상 내 주머니에 손난로를 넣어주곤 하셨어."

 

"보온병... 할머니가 쓰시던 것이 부엌 찬장 위쪽에 있을 거야. 오래되어서 좀 낡았지만 아직 쓸 만하다. 할머니는 항상 레몬차를 끓여서 담아가셨지. 새콤달콤해서 바다 바람에 지친 몸을 달래주곤 했어."

 

"내일 저녁에 일찍 잠들어야겠구나. 새벽 네 시쯤에는 일어나야 일출을 볼 수 있을 테니까. 너무 일찍이라 힘들면 다른 날로 미뤄도 되는데..."

 

"할아버지와 바다 가는 날만 기다렸어요! 절대 다른 날로 미루지 않을 거예요!"

 

5.조개 모으기

파렌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걸어가 창문 옆 오래된 옷장을 열었다. 손을 뻗어 맨 위 선반에서 작은 나무 상자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이건 할머니가 바다에 갈 때마다 가져가던 거야."

 

상자를 열자 작은 조개껍데기들과 바닷가에서 주운 예쁜 돌멩이들이 나왔다. 각각에는 날짜가 적혀 있었다.

 

"할머니는 매번 바다에 가면 가장 예쁜 조개 하나를 주워오셨어. 그리고 그날의 날짜를 적어두셨지. 우리도 이렇게 하나 주워오면 어떨까? 네 방에 두고 오늘의 바다를 기억할 수 있을 거야."

 

파렌스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지만, 그의 미소는 흔들림이 없었다.

 

"네 일출 사진, 우리 발자국 사진, 그리고 조개 하나... 우리만의 추억을 만들어보자꾸나."

 

"할머니는 이 작은 것들이 우리 삶의 표시라고 하셨단다. 이 작은 돌멩이와 조개껍데기 하나하나에 그날의 바다 향기와 파도 소리가 담겨 있다고..."

 

그는 조심스럽게 조개 하나를 집어들었다. 5월 15일이라고 적힌 작은 하얀 조개였다.

 

"이날은 네 아버지가 대학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은 날이었지. 우리 모두 기뻐서 바다로 갔었어. 할머니는 늘 좋은 일이 있을 때마다 바다에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다고 하셨거든."

 

파렌스의 투박한 손가락이 조개 표면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의 눈에는 이미 지나간 시간의 그리움이 깃들어 있었다.

 

"그리고 이건..."

 

그는 작은 분홍빛 조개를 들어올렸다. 10월 4일이라고 적혀 있었다.

 

"네가 태어난 날이란다. 할머니가 네 탄생을 축하하며 바다에 가서 가져온 거야. 네 아버지와 어머니가 너를 안고 있는 사진도 있을 거다."

 

파렌스는 앨범을 다시 펼쳐 그 날짜를 찾아보았다. 병원에서 갓 태어난 한지를 안고 있는 부모님의 행복한 모습, 그리고 옆에서 어색하게 서 있는 젊은 할아버지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있었다.

 

"우리도 내일 가서 특별한 조개 하나를 주워오자. 우리의 첫 바다 추억을 담아서."

 

"어떤 모양이든, 어떤 색이든 상관없다. 네가 고른 것이라면, 그것이 우리에게 가장 특별한 보물이 될 테니까. 이제 그만 자러 가야지. 내일 일찍 일어나려면 이만 쉬어야 한단다."

 

6.

"네 할머니는... 좋은 일이 있으면 파도 소리에 기쁨을 실어 보내고, 슬픈 일이 있으면 짠 바닷물에 슬픔을 흘려보내곤 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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