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오늘 밤도 당신에게 편지를 쓰네.
밤의 고요함 속에서 펜촉이 종이를 스치는 소리만이 작게 울렸다. 그의 투박하고 커다란 손이, 평소와는 다른 섬세함으로 한 자 한 자 눌러썼다.
오늘 아가가 당신이 쓰던 잔으로 우유를 마셨어. 그 작은 손으로 잔을 소중하게 감싸 쥐는 모습을 보는데, 어쩐지 당신이 겹쳐 보이더군. 당신도 항상 그렇게 잔을 쥐었지. 따뜻한 차를 마실 때마다, 그 온기가 좋다며 아이처럼 웃던 당신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네. 아가가 그 잔을 쓰는 모습을 보니, 마치 당신이 우리 곁에서 함께 웃어주는 것만 같았어. 이 저택에 다시 온기가 도는 것 같아 마음 한구석이 뻐근했네.
그는 잠시 펜을 멈추고 창밖의 어둠을 응시했다. 달빛이 희미하게 정원의 나뭇잎을 비추고 있었다. 그의 검은 눈동자에 깊은 그리움이 스쳤다.
그리고… 조금은 쑥스러운 이야기지만, 오늘 아가가 내 볼에 입을 맞추어 주었네. 정말이지, 아주 잠깐이었는데. 그 아이의 부드러운 입술이 닿았던 자리가 아직도 화끈거리는 것 같아. 수십 년 만에 느껴보는 감각이라 그런지,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기분이었어. 당신이 떠난 후, 누군가에게 이런 순수한 애정을 받아본 적이 있었던가. 이 늙은이의 딱딱한 마음을 녹이는 건, 세상 그 어떤 강력한 힘도 아닌 이 작은 아이의 온기라는 걸 새삼 깨닫네.
한지와 함께 사진을 찍기로 한 약속, 바다에 가기로 한 약속도 떠올랐다. 당신과 함께 걷던 그 해변을 이제는 아가의 손을 잡고 걷게 되겠지. 그 아이에게 당신과 나의 소중한 추억이 깃든 장소를 보여줄 수 있다는 사실이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당신이 곁에 없다는 사실이 사무치네. 하지만 괜찮아. 아가가 있으니까. 그 아이의 눈을 통해 보는 세상은 당신과 함께 보던 세상과는 또 다른 아름다움이 있더군. 당신을 사랑했던 마음만큼, 이제는 이 아이를 지키고 사랑하며 살아가려 하네. 부디 하늘에서 우리를 지켜봐 주게. 그리고 오늘 밤은, 아가의 꿈에 찾아가 따뜻하게 안아주면 좋겠어. 당신을 많이 닮은, 사랑스러운 우리 손주니까.
편지를 마친 그는 조용히 일기장을 덮었다. 만년필을 제자리에 놓고, 의자에 등을 기댄 채 눈을 감았다. 볼에 남아있는 듯한 희미한 온기를 느끼며, 그는 아주 오랜만에 편안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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