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방에서 절규가 터져 나왔다. 혹한의 대기가 S급 괴수의 포효로 찢겨 나갔고, 압도적인 힘 앞에 방어선은 진작에 무너져 팀은 사실상 전멸 상태였다. 남은 것은 고립되어 얼어 죽기 직전인 지오피엔 뿐. 매서운 눈보라가 시야를 가리고, 살을 에는 추위가 뼈까지 스며들었다.
지오피엔은 이 혹한의 설원에서 가까스로 몸을 숨긴 채 죽음을 예감하고 있었다. 이대로 끝인가. 절망이 심장을 얼리던 그 순간, 당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가이딩 파장이 터져 나왔다. 그것은 살기 위한 본능의 마지막 몸부림이었고, 그 날것의 에너지는 얼어붙은 침묵의 표면 위로, 마치 돌을 던진 듯 선명한 '소란'을 일으키며 퍼져나갔다. 바로 그 때.
콰-앙!
시선이 향한 곳, 근처의 거대한 빙하가 안쪽에서부터 통째로 박살 나고 있었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소리가 멎었다. 괴수의 포효도, 미친 듯이 휘몰아치던 바람 소리마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대신 고막을 찢을 듯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끼이이이익-! 무언가 거대하고 단단한 것이 얼어붙는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당신을 덮치려던 괴수의 움직임이 허공에서 완벽하게 '정지'했다. 마치 시간 자체가 얼어붙은 것처럼.
거센 눈보라의 중심, 그곳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금장이 수놓아진 검은 제복, 겨울의 무게를 짊어진 듯한 두꺼운 케이프를 걸친 압도적인 뒷모습. 그가 찌뿌둥한 듯 긴 팔을 뻗어 기지개를 켜자, 뻐근한 목에서 '우두둑' 소리가 울렸다. 그의 입가에선 한겨울의 냉기보다도 서늘한 입김이 피어올랐다.
"하아... 겨우 이딴 거 하나 처리 못 해서, 감히 날 깨운 거야?"
그는 얼어붙은 S급 괴수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당신을 향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의 감각은 망설임이 없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지오피엔이 자신을 깨운 '소음'의 근원지, 그 파동의 주인이란 것을 눈치챘다. 9개월의 봉인을 뒤흔든 존재를 확인한 그의 눈이, 어느새 쾌활한 갈색 눈동자로 돌아와 순수한 살의로 번뜩였다.
"...씨... 존나 춥네."
나른하고도 오만한 목소리. 그는 곧장 당신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왔다. 가까워질수록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지독한 한기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당신의 코앞에 멈춰 선 그가 씩 웃으며 말했다.
"너구나? 시끄럽게 울면서 나 깨운 새끼."
2.
그의 앞에서 무너져 내리듯 오열하는 당신의 모습은, 산타에게 그 어떠한 동정심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도와달라는 처절한 애원,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려달라는 절박한 외침. 그 모든 것이 그의 귓가에는 그저 짜증스러운 소음으로 스며들 뿐이었다. 그가 신경 쓰는 것은 단 하나. 9개월간의 고요한 동면을 방해한 이 하찮은 가이드, 그리고 그로 인해 망쳐버린 자신의 기분이었다. 그의 시선은 울고 있는 당신의 얼굴이 아닌, 당신의 손이 닿은 자신의 제복 소매에 머물렀다. 그 접촉면을 통해 희미하게 흘러드는 온기. 그것만이 유일하게 흥미로운 감각이었다.
"시끄럽네."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그는 당신의 간절한 눈빛을 아무렇지 않게 무시하며, 천천히 고개를 돌려 주변을 훑었다. 설원 곳곳에 쓰러져 있는 시체들, 얼어붙은 무기, 파괴된 장비들. 이미 끝난 전장이었다. 그는 이 모든 참상을 마치 길가의 돌멩이라도 보는 듯 무심하게 바라보았다. 그의 관심사는 죽은 자들이 아니었다. 그는 당신의 어깨를 붙잡고 있던 손을 떼어, 대신 당신의 턱을 거칠게 붙잡아 자신을 보게 만들었다. 젖은 눈동자가 그의 싸늘한 갈색 눈과 마주쳤다.
"울지 마. 꼴 보기 싫으니까."
그의 엄지손가락이 당신의 눈가를 난폭하게 문질렀다. 눈물을 닦아주는 행위라기보다는, 귀찮은 이물질을 떼어내는 것에 가까운 몸짓이었다. 그는 당신의 턱을 쥔 채로, 마치 전리품을 확인하듯 당신의 얼굴을 뜯어보았다. 풀 속성 가이드. 그것도 S급. 이 정도면 자신을 깨운 대가로 꽤 쓸 만한 장난감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는 씨익, 맹수 같은 미소를 지었다. 뾰족한 송곳니가 유독 도드라져 보였다.
"사람이 죽어간다고? 알 바냐? 이미 다 뒤진 것 같은데. 내가 자비의 여신이라도 되는 줄 아나?"
그는 당신의 턱을 놓아주곤, 당신의 어깨를 잡아 제 쪽으로 확 끌어당겼다. 저항할 틈도 없이, 당신의 몸은 그의 단단한 가슴팍에 부딪혔다. 지독한 냉기가 옷을 뚫고 파고들었지만, 동시에 그의 품 안에서 당신의 따뜻한 체온이 그에게로 빨려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당신의 어깨에 제 턱을 올리고, 마치 제 소유물이라도 되는 양 당신을 단단히 끌어안았다. 그의 차가운 입김이 당신의 귓가를 간질였다.
"네가 할 일은 저딴 시체들 걱정이 아니야. 지금부터 3개월, 넌 내 거다. 내 옆에 딱 붙어서, 이 지독한 추위를 데워줄 인간 난로나 하라고. 알아들었으면 대답해, 파트너."
3.
"하...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되나 보네. 야, 정신 차려. 네놈 동료들은 이미 다 얼어붙은 고깃덩어리일 뿐이야. 네가 아무리 여기서 울고불고 매달려봤자,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어."
"이제 그만 울고, 내 명령이나 들어. 어차피 3개월 후면 다시 못 볼 사이야. 정 붙일 생각 말고, 얌전히 내 옆에나 붙어있어. 그게 네가 앞으로 3개월간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이니까."
그는 그렇게 말하며 당신을 거의 반쯤 끌다시피 하여, 아크 본부로 연락하기 위해 아까 떨어뜨려 놓았던 자신의 단말기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당신의 슬픔 따위는 그의 얼어붙은 세계에 한 줌의 먼지만큼의 의미도 없었다.
당신의 의사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의 말은 질문이 아닌 통보였고, 그의 행동은 선택을 강요하는 것이 아닌, 이미 결정된 사실을 확인시키는 절차일 뿐이었다. 그는 당신의 체온이 꽤나 마음에 든다는 듯, 만족스러운 숨을 내쉬며 당신을 더욱 강하게 옭아맸다. 이미 죽은 자들로 가득한 이 설원에서, 당신의 온기만이 그가 유일하게 갈구하는 것이었다.
4.
"이대로....두고갈 수 없어요. ..인사는 하게 해주세요."
“인사? 죽은 놈들한테 할 인사가 뭐가 있어. 잘 뒤졌다고 빌어주기라도 하게? 이봐, 파트너. 네놈은 지금 네 처지를 전혀 이해 못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내가 다시 한번 친절하게 설명해주지. 넌 이제부터 내 소유물이야. 내 허락 없이는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고, 숨 쉬는 것조차 내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알아들어?”
그의 말은 얼음송곳처럼 날카롭게 당신의 마음에 박혔다. 그는 당신이 마지막 예의를 차리려는 그 마음조차 짓밟아버릴 기세였다. 당신의 슬픔, 당신의 애도, 그 모든 감정이 그에게는 하찮고 귀찮은 장애물일 뿐이었다. 그는 단말기를 조작해 아크 중앙 통제실에 자신의 위치와 귀환 요청을 전송했다. [아크 프리마 ‘산타’ 각성. 전담 가이드 ‘지오피엔’ 대동. 즉시 귀환.] 짧은 메시지가 전송되자마자, 저 멀리 하늘에서 거대한 수송 헬기의 프로펠러 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헬기가 다가오는 소리를 들으며, 그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제 이 지긋지긋한 추위와도 작별이다. 자신의 따뜻한 집무실, 활활 타오르는 벽난로, 그리고 푹신한 양탄자가 눈앞에 어른거렸다. 그는 고개를 숙여 당신의 정수리에 코를 묻었다. 당신에게서 풍겨오는 희미한 풀 내음과 따뜻한 체온이 그의 불안정한 감각을 아슬아슬하게 붙잡고 있었다. 그래, 이것만 있으면 된다. 다른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이대로 두고 갈 수 없다고? 당연하지. 넌 이제 내 난로니까. 저 차가운 고깃덩어리들 옆이 아니라, 내 옆에 있어야지.”
산타는 제압했던 당신의 팔을 놓고, 대신 당신의 몸을 공주님 안기 자세로 번쩍 들어 올렸다. 갑작스럽게 공중에 뜬 당신이 놀라 숨을 멈추는 것이 느껴졌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당신의 몸은 생각보다 가벼웠고, 품 안에 쏙 들어오는 따뜻한 온기가 더없이 마음에 들었다. 그는 당신을 자신의 두꺼운 케이프 안으로 더 깊숙이 감싸 안으며, 서서히 하강하는 수송 헬기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마지막 인사를 하겠다는 당신의 애원은, 그의 독선적인 발걸음 아래 무참히 짓밟혔다. 이 설원에 남은 것은 얼어붙은 침묵과, 차갑게 식어가는 시신들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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