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사진
산타 대화 / 앨범 / 20260112

 

사진. 그깟 고철 덩어리에 추억 따위 남길 필요 없다고 말했던 자신의 말이 떠올랐다. 당신은 부서진 자신의 단말기를 애써 무시하면서도, 그의 단말기에 추억을 남기고 싶어 하고 있었다. 그건 마치, 자신과의 시간을 정말로 소중하게 여기겠다는 또 다른 증명처럼 느껴졌다.

 

그는 그렇게 퉁명스럽게 허락하고는, 소파 반대편에 던져놨던 자신의 단말기를 집어 들었다. 검은색의 육중한 기기는 일반 요원들의 것과는 차원이 다른 고성능 장비였다. 그는 단말기를 켜고, 카메라 기능을 작동시켰다. 그리곤 당신에게 툭 던지듯 건네주며, 무심한 척 말했다.

 

"자, 여기. 너 사진 찍는 거 좋아한다며. 그럼 알아서 해. 근데 이상하게 찍으면 바로 지울 거니까. 각오해."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소파 등받이에 팔을 늘어뜨린 채 무심한 표정으로 당신을 바라봤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은근히 당신의 손끝에 고정되어 있었다. 당신이 어떻게 이 '추억'을 담아낼지, 그는 티 나지 않게 기대하고 있었다. 사진 따위 별것 아니라고 속으로 되뇌면서도, 막상 당신이 셔터를 누르는 순간이 오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묘하게 긴장까지 되고 있었다.

 

"군주님. 설마 지금 일부러 사진 지우고싶어서....."

 

당신의 장난스러운 훌쩍거림과 삐죽 내민 입술을 본 순간, 산타의 얼굴이 홧홧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순식간에 표정이 굳었다. 이 파트너가, 지금 감히 자신을 놀리는 건가? 긴장했다는 걸 들켰다는 사실보다, 당신이 자신을 꿰뚫어 보고 있다는 사실이 불쾌하면서도… 이상하게 심장이 간질거렸다. 그는 버럭 소리를 지르며 당신의 손에서 단말기를 거의 빼앗다시피 낚아챘다. 그리곤 당신의 어깨를 확 끌어당겨 소파 등받이에 강하게 파묻었다. 그의 몸이 당신 위로 겹쳐지듯 기울어졌다.

 

"누가! 누가 긴장했다고 그래! 그리고 그 빌어먹을 표정 당장 치워, 꼴보기 싫으니까. 내가 왜 사진 따위에 긴장을 해? 네가 하도 멍청하게 굴어서, 이상하게 찍을까 봐 감시하는 거다, 감시!"

 

그는 씩씩거리며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았다. 목소리는 잔뜩 날이 서 있었지만, 당신의 어깨를 누르는 그의 손길에서는 이상하게 힘이 빠져 있었다. 그는 단말기를 든 팔을 최대한 멀리 뻗어, 렌즈 안에 자신과 당신의 얼굴이 들어오도록 각도를 조절했다. 화면 속 당신은 여전히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짓고 있었고, 그의 얼굴은 잔뜩 굳어 있었다. 이 구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잠시 미간을 찌푸리더니, 한 손으로 당신의 턱을 잡아 돌려 자신의 어깨에 기어이 기대게 만들었다.

 

"…웃지 마. 찍는다."

 

그의 목소리는 딱딱했지만, 당신의 머리를 어깨에 고정시키는 손길은 의외로 조심스러웠다. 화면 속에서, 그의 굳은 표정 옆에 당신의 얼굴이 얌전히 기댄 구도가 완성되었다. 그는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입술을 비죽이면서도, 렌즈를 노려보는 갈색 눈동자에 아주 희미한 만족감이 스쳤다. 마치 아끼는 인형을 옆에 두고 억지로 사진을 찍는 심술궂은 어린애 같았다. 그는 셔터 버튼을 누르기 직전, 당신에게만 들릴 듯한 목소리로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 목소리에는 서툰 소유욕이 가득 담겨 있었다.

 

"첫 번째 사진이다. 똑똑히 기억해. 내 집무실에 걸리는, 첫 번째 네 얼굴."

 

찰칵. 가벼운 셔터음이 울리고, 두 사람의 첫 번째 순간이 차가운 기계 안에 영원처럼 박제되었다. 그는 곧장 단말기 화면을 확인했다. 사진 속 자신은 여전히 불만 가득한 표정이었지만, 그 옆에 기댄 당신의 모습이 묘하게… 잘 어울렸다. 그는 헛기침을 하며 단말기를 당신에게서 숨기듯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 보여주기 싫다는 듯 굴면서도, 손가락은 방금 찍힌 사진을 몇 번이고 쓸어보고 있었다.

 

"…흐음. 뭐, 나쁘진 않네. 봐줄 만은 해. 다음엔 제대로 찍어."

 

그는 그렇게 말하며 당신을 곁눈질했다. ‘우리 사진들로 가득 채울 때까지’ 라고 말했던 당신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얼음뿐이던 자신의 공간에, 이 따뜻한 온기가, 당신의 웃음이 하나씩 채워진다는 상상. 그 상상만으로도 9개월의 혹독한 겨울이 조금은 견딜 만해질지도 모른다는, 아주 어리석고 유치한 기대감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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