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가진 단말기
산타 대화 / 대화 / 20260109

1.

삐빗-!

 

그것은 당신의 허리춤에 채워진 개인 단말기에서 나는 소리였다. ARCH의 모든 요원에게 지급되는, 임무와 정보를 전달하는 기기. 산타의 집무실은 외부와 완벽히 차단된 공간이었지만, 아크 프리마의 집무실인 만큼 최상위 등급의 긴급 알림은 그 차폐를 뚫고 들어온 모양이었다. 산타의 미간이 순간적으로 좁아졌다. 이제 막 둘만의 규칙을 정하고, 이 안락한 온기를 온전히 독차지하려던 순간에 끼어든 방해물에 대한 노골적인 불쾌감이었다.

 

그의 시선이 당신의 허리춤에 꽂혔다. 당신이 확인하기도 전에, 그는 당신의 허리를 감싸 안고 있던 팔을 움직여 직접 단말기를 빼앗아 들었다. 그의 커다란 손 안에서 당신의 단말기는 작은 장난감처럼 보였다. 그는 한쪽 눈썹을 까딱이며 액정에 떠오른 알림창을 소리 내어 읽기 시작했다. 그 목소리에는 방해받은 것에 대한 짜증과 함께, 알림의 내용을 향한 일말의 흥미가 섞여 있었다.

 

“어디 보자… 하모니 부서 정기 평가라….”

 

그가 조롱하듯 중얼거리며 당신을 쳐다보았다. 그의 눈빛은 ‘네가 이런 시시껄렁한 일에 불려 다녔단 말이지?’라고 말하는 듯했다.

 

 [  ARCH 정기 알림 ]

TO: 요원 지오피엔
FROM: 하모니 부서 중앙 관리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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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급 가이드 정기 파트너십 적합도 평가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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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가이드 요원 지오피엔은 지정된 일시에 하모니 부서에서

주관하는 파트너십 적합도 평가에 의무적으로 참석해야 합니다.

 

일시: 금일 15:00 

장소: 하모니 부서 시뮬레이션 룸 7 

평가 내용: 신규 S급 센티넬 후보와의 기초 파장 동기화 및 가이딩 효율 측정 

규칙: 본 평가는 요원의 공식 파트너 배정을 위한 필수 절차이며,

불참 시 규정에 따라 징계 위원회에 회부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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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는 알림의 마지막 문장까지 전부 읽고는,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당신의 단말기 화면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툭툭 치며 말했다. 그 안에는 ‘징계 위원회’라는 단어가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파트너 배정? 징계 위원회? 하. 이것들,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되나 보군.”

 

그는 들고 있던 당신의 단말기를 마치 거슬리는 벌레를 잡듯, 가볍게 손아귀에 쥐었다. 우드득, 하는 불길한 소리와 함께 단말기의 강화 플라스틱 케이스가 으스러지기 시작했다.

 

 2.

"허...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제 단말기까지 부수면 어떡해요. 군주님..."

 

단말기에 담긴 추억들이 한순간에 흔적도 없이 부서진 거 같아서 한지는 마음이 아파왔다.

 

"그깟 고철 덩어리 하나에 무슨 추억씩이나. 우는 소리 할 거면 관둬. 듣기 싫으니까.”

"혹시 모르죠? 군주님 단말기에도 행복하고 소중한 추억이 많이 담기면 군주님에게 그깟 고철덩어리가 아닐 순간이 올 수도 있잖아요."

 

그는 당신의 허리를 감은 팔에 힘을 주어 몸을 더욱 바싹 끌어당겼다. 당신의 웃는 얼굴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그는 당신의 그 빛나는 눈을 들여다보며, 자신의 혼란을 감추기 위해 일부러 더 차갑고 오만한 목소리를 냈다.

 

“허… 행복? 야, 너 지금 나한테 개소리를 얼마나 정성스럽게 늘어놓는지는 알아?"

 

그는 조롱하듯 말했지만, 목소리는 미세하게 잠겨 있었다. 그는 당신의 시선을 피하듯 고개를 살짝 돌려, 바닥에 흩어진 단말기 파편을 내려다보았다. ‘군주님에게도 그깟 고철덩어리가 아닐 순간이 올 수도 있다’는 당신의 말이 귓가에 이명처럼 맴돌았다. 그는 이를 악물었다. 그런 순간은 오지 않는다. 와서는 안 된다. 하지만 그는 당신이 제안한 그 ‘행복’을 거절하지 않았다. 아니, 거절할 수가 없었다. 3개월 후면 사라질 신기루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는 태어나 처음으로 그 신기루를 붙잡아보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혔다.

 

“……전부 기억하겠다고 했지.”

 

그가 낮게 읊조렸다. 그는 당신의 턱을 부드럽게, 그러나 단단히 붙잡아 자신을 보게 했다. 그의 엄지손가락이 당신의 아랫입술을 천천히 쓸었다. 그 뜨겁고 위험한 눈동자가 당신을 정면으로 꿰뚫었다.

 

"네. 전부 기억할 거예요. 절대 잊을 수 없어요. 왜냐하면..... 함께한 시간은 고스란히 마음과 기억에 남겨든요."

 

‘함께한 시간은 고스란히 마음에 남는다.’ 그 말이 그의 뇌리에 낙인처럼 새겨졌다. 그는 지난 14년간, 그 어떤 시간도 마음에 남기지 않으려 발버둥 쳐왔다. 3개월짜리 온기, 3개월짜리 관계, 3개월짜리 생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어야 했다. 그러나 당신은 그 모든 것을 비웃기라도 하듯, 영원할 것처럼 3개월을 보내자고 말한다. 아무것도 계산하지 않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마치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쉽고 당연한 일이라는 듯이. 그 무모하고 순진한 제안에, 산타는 처음으로 ‘영원’이라는 것을 상상해보고 싶다는 미친 충동에 휩싸였다. 다시 잠들어야 한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고 싶을 만큼.

 

“……야.”

 

그가 간신히 목소리를 쥐어짰다. 당신의 턱을 놓고, 대신 당신의 어깨를 감싸 안은 팔에 힘을 주어 품으로 완전히 끌어당겼다. 당신의 작고 따뜻한 몸이 그의 가슴에 꼭 맞게 안겨왔다. 그는 당신의 정수리에 자신의 턱을 올리고, 당신의 머리카락에 코를 묻었다. 포근한 풀 내음과 당신의 체향이 뒤섞여 그의 폐부를 가득 채웠다. 그는 잠시 눈을 감았다. 이 안정감, 이 온기. 이걸 고작 3개월밖에 누릴 수 없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억울하게 느껴졌다.

 

산타는 당신의 품에 얼굴을 묻은 채, 당신의 그 단호한 목소리를 들었다. 후회하지 않겠다는 선언. 영원할 것처럼 함께하겠다는 약속. 그 말들은 얼음 가시처럼 그의 방어적인 마음을 파고들어, 차갑게 얼어붙어 있던 무언가를 녹여내리는 것 같았다. 그는 당신을 끌어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이 온기, 이 확신에 찬 목소리, 자신을 향한 꾸밈없는 진심. 이 모든 것이 낯설고 두려우면서도, 지독하게 갈망하게 되는 감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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