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중한 마음? 그딴 건 죽은 네 동료들 무덤에나 가서 실컷 속삭여. 난 산 사람이고, 죽은 것들한테 쓸 동정 따위는 없어."
"군주님이 무덤을 만들 수 있게 허락만 해주신다면요."
무덤. 산타의 입에서 '동료들 무덤'이 나오자 한지는 씁쓸하게 미소를 지었다. 동료들은 추운 곳에 그대로 누워있다. 차디찬 곳에서 눈보라를 맞으며 차게 식은 시신은 더욱 얼어붙고 추운 곳에서 고립되겠지. 살이 에는 추운 곳에 잠들어있다는 생각에 한지는 눈물을 간신히 참아냈다.
"3개월 후면.. 시신을 수습할 수 없어요. 저는 힘이 없지만... 군주님은 힘이 있으시잖아요."
추운 곳에 두고싶지 않다. 돌아올 곳이 동료들에게 있었으면 해서. 그리고 산타의 말처럼 죽은 동료들 무덤에서 실컷 속삭여주고 싶어서 한지는 떨리는 목소리로 산타에게 요구했다. 죽은 사람을 기릴 수 있게 제발 도와달라고.
"제가 이기적이라는 거 알아요. 군주님을 깨운 것도 모자라 동료들 무덤을 만들 수 있게 도와달라는 거 뻔뻔해보일지도 몰라요. 그렇지만 죽은 동료들 무덤에나 가서 실컷 속삭이라고 군주님께서 직접 말씀하셨잖아요. 시신을 수습하고 춥지 않은 곳에서 잠들 수 있게... 도와주세요. 부탁드릴게요."
2.
당신의 당돌한 요구에 산타는 기가 차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그 웃음 끝에는 묘한 만족감이 걸려 있었다. 그는 당신의 젖은 뺨을 엄지로 무심하게 닦아내더니, 다른 한 손으로 허공에 홀로그램 패널을 띄웠다. 그의 손가락이 복잡한 절차를 무시하고 단 몇 번의 터치만으로 시스템의 최상위 권한을 해제했다.
곧이어, 당신의 개인 단말기가 요란한 진동과 함께 붉은 빛을 토해냈다. 일반적인 임무 알림과는 차원이 다른, 군주의 권한으로 강제 발동된 최우선 명령이었다.
[ ARCH SPECIAL DIRECTIVE ]
CLASSIFICATION: TOP SECRET (ARCH-PRIMA AUTHORITY)
CODE: OP-FROZEN-TEARS
TO: 요원 한지 (ID: Zhaopian) / CMD: ARCH-PRIMA 'SANTA'
[ 작전 개요 ]
귀관의 요청에 따라 '섹터-4 빙하 지대' 내 사망한 아군 요원(Team Zhaopian)의 시신 수습 및 후송 작전을 승인함. 본 작전은 아크 프리마 '산타'의 직접 지휘 하에 수행됨.
[ 주요 목표 ]
- 지정 좌표 내 아군 시신 3구 확보 및 냉동 캡슐 안치.
- 현장 내 잔존 위협 요소(괴수)의 완전 소거.
- 작전 종료 즉시 본부 복귀.
[ 특이 사항 ]
※ 경고: 본 작전 구역은 현재 '절대 영도'에 가까운 기온을 유지 중임. 아크 프리마의 반경 5m를 벗어날 시 즉사 위험 있음. 파트너는 군주의 곁에서 절대 이탈하지 말 것.
" T-MINUS 600 SECONDS. 준비해. "
화면에 뜬 내용을 확인하기도 전에, 산타는 이미 자리에서 일어나 두꺼운 케이프를 다시 고쳐 입고 있었다. 그는 멍하니 단말기를 바라보는 당신의 머리 위로 자신의 털모자를 푹 눌러씌웠다. 시야가 가려져 어리둥절한 당신의 손목을, 그가 크고 따뜻한 손으로 단단히 옭아맸다.
"뭘 멍청하게 보고 있어? 가자고. 네가 원한 거잖아."
그는 당신을 일으켜 세우며, 짐짓 귀찮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당신의 손목을 쥔 그의 악력은 도망치지 못하게 하려는 구속이라기보단, 혹독한 추위 속에서 당신을 놓치지 않으려는 보호에 가까웠다. 그는 집무실 문을 향해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며, 뒤따라오는 당신을 향해 툭 내뱉었다.
"착각하지 마. 네가 슬퍼서 질질 짜는 꼴이 보기 싫어서 가는 거니까. 가서 네 동료들 챙겨. 그리고 돌아오면… 약속대로 넌 이 방에 갇혀서 내 비위나 맞추는 거야. 알겠어, 파트너?"
그의 등 뒤로 문이 열리자, 복도의 차가운 공기가 훅 끼쳐왔다. 하지만 맞잡은 손을 통해 전해지는 그의 체온만큼은, 그 어떤 난로보다도 뜨겁게 당신의 혈관을 타고 흘러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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