찐빵
산타 대화 / 그외 / 20260109

1.

당신의 퉁퉁 부은 눈을 손가락으로 툭, 건드렸다.

 

“눈은 또 왜 그렇게 부었어. 꼭 찐빵 같네. 누가 보면 내가 너 잡아먹기라도 한 줄 알겠다. 어이, 찐빵. 대답.”

 

그의 입가에 희미한, 장난기 어린 미소가 걸렸다. 당신의 슬픔을 멈추게 할 가장 빠른 방법은, 다른 감정으로 그 슬픔을 덮어버리는 것이라는 단순한 결론에 도달한 참이었다. 공포, 혹은 짜증, 아니면… 당황스러움 같은 것들로. 그는 당신의 반응을 기다리며, 흥미롭다는 듯 눈을 빛냈다. 이 인간 난로는 데리고 노는 맛이 제법 있을 것 같았다.

 

2.

"죄송해요. 손수건은 빨아서 드릴게요."

 

당신의 잠긴 목소리가 헬기 안의 소음 속을 겨우 비집고 그의 귓가에 닿았다. 죄송하다니. 빨아서 돌려준다니. 산타는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 상황에 나오는 대답이 고작 그거란 말인가. 그는 자신의 의도가 완벽하게 빗나갔음을 깨달았다. 슬픔 대신 다른 감정을 주려 했더니, 되려 더 풀이 죽은 강아지 같은 꼴이 되어버렸다. 이래서야 재미가 없지. 그는 팔짱을 탁, 소리가 나게 풀며 당신의 이마에 삿대질하듯 손가락을 뻗었다.

 

"야, 찐빵. 너 지금 내 말 못 들었냐? 내가 손수건 따위 때문에 이러는 것 같아? 그깟 천 쪼가리 하나보다 네 그 질질 짜는 소리가 백만 배는 더 시끄럽다고. 귀 아파 죽겠네. 그리고 누가 너더러 사과하랬어? 내가 듣고 싶은 대답은 그게 아니잖아."

 

그는 당신의 축 처진 어깨를 보며 혀를 찼다. 이래서는 곤란했다. 앞으로 3개월 동안 이 축축한 분위기를 견뎌야 한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골치가 아팠다. 그는 자신의 본래 목적, 즉 이 인간 난로의 '효율'을 최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축 처진 난로는 화력도 약한 법이다. 그는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묘한 웃음을 지으며 당신의 턱을 가볍게 쥐어 제 쪽으로 돌렸다. 억지로 눈을 마주치게 만든 그는, 퉁퉁 부은 당신의 눈두덩과 빨개진 코끝을 보며 놀리듯 말했다.

 

"됐고. 너, 지금부터 웃어. 아니, 웃을 기분 아니면 화라도 내던가. 그렇게 밍기적거리는 찐빵은 난로로서 효율 제로라고. 이봐, 내가 널 살려둔 건 인형놀이 하려고가 아니야. 뜨끈뜨끈하게 날 데우라고 살려둔 거니까, 그 값은 해야지. 안 그래?"

 

그의 엄지손가락이 눈물로 축축한 당신의 뺨을 슬쩍 닦아냈다. 그 손길은 위로라기보다는, 마치 더러운 것을 닦아내는 듯 무심하고 건조했다. 하지만 그 차가운 손가락 끝에 닿는 당신의 피부는 여전히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그 온기만큼은 지독할 정도로 마음에 들었다. 그는 당신의 반응을 기다리며, 그 장난기 어린 표정을 지우지 않았다. 어서 이 재미없는 슬픔을 걷어내고, 다른 표정을 보여보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3.

"살려주신 건 감사해요."

 

산타는 잠시 말을 잃었다. 마치 전혀 예상하지 못한 답안지를 받아 든 선생처럼. 그의 갈색 눈동자가 당황스러움으로 미세하게 흔들렸다. 감사? 이 상황에? 그는 화를 내거나, 혹은 어이없어서 웃어버리기라도 할 줄 알았다. 그런데 고작 나온다는 말이, 진심이 꾹꾹 눌러 담긴 감사의 말이라니. 그의 장난기 어린 표정이 순식간에 싹 가시고, 본래의 짜증스러운 얼굴로 돌아왔다. 그는 어이가 없다는 듯 헛바람을 픽, 내뱉으며 당신의 턱을 잡았던 손을 놓았다.

 

"야, 찐빵. 너 지금 말귀를 못 알아듣냐? 내가 지금 네 감사 인사나 받자고 이러는 줄 알아? 아니,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 내가 널 살린 건… 그래, 뭐,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지. 근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지금 중요한 건 네 그 밍기적거리는 태도라고!"

 

그는 답답하다는 듯 제 머리를 거칠게 헝클어뜨렸다. 대화가 전혀 통하지 않는 벽에다 대고 소리치는 기분이었다. 그의 계획은 완벽하게 빗나갔다. 슬픔을 다른 감정으로 덮어버리려 했더니, 더 깊은 수렁으로 가라앉아 버린 꼴이라니. 그는 턱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당신의 눈물방울을 홧김에 손등으로 툭, 쳐서 닦아냈다. 여전히 불덩이 같은 열기가 손등을 스쳤다. 그래, 이 온기. 결국 목적은 이것뿐인데, 과정이 너무나도 비효율적이었다.

 

그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무슨 결심이라도 한 듯 당신 쪽으로 몸을 완전히 틀어 앉았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당신의 어깨를 잡아 제 쪽으로 끌어당겨 품에 가둬버렸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당신의 몸이 흠칫 떨리는 게 느껴졌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좁은 좌석에서 당신을 더 편하게 안기 위해 몸을 뒤척이며 자리를 잡았다. 그의 두꺼운 제복과 케이프가 당신의 몸을 완전히 감쌌고, 서늘한 한기와 그의 체향이 훅 끼쳐왔다.

 

"됐다, 됐어. 말로 해선 안 되겠네. 넌 그냥 이렇게 안겨서 따끈한 온도나 제공해. 입은 다물고. 원래 난로는 말 안 하잖아. 안 그래?"

 

그의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머리 위에서 낮게 울렸다. 그는 당신의 정수리에 제 턱을 척, 올려놓고는 편안한 자세를 잡았다. 방금 전까지의 소란은 온데간데없이, 그는 그저 제 마음에 쏙 드는 인간 난로의 온기를 만끽하기 시작했다. 얼음장 같은 그의 몸과 불덩이 같은 당신의 몸이 맞닿자, 묘한 안정감이 헬기 안을 채웠다. 그는 만족스러운 듯 눈을 감으며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그 목소리에는 어쩔 수 없다는 체념과, 아주 약간의 만족감이 섞여 있었다.

 

"...시끄럽고, 따뜻해서 좋네. 앞으로 3개월간 넌 딱 이 자세야, 찐빵. 알겠냐."

 

 

4.

젠장. 품에 안았더니 더 시끄럽게 구네. 산타는 제 품 안에서 작게 들썩이며 울음을 터뜨리는 당신의 정수리를 내려다보며 속으로 욕설을 짓씹었다. 그의 제복 앞섶이 축축하게 젖어드는 불쾌한 감각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따뜻한 건 좋은데, 축축한 건 질색이었다. 마치 눈이 녹아 질척거리는 길바닥을 밟는 기분이랄까. 그의 미간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원래 난로는 물을 뿜어내지 않는다. 이건 명백한 불량품이다. 그는 당신을 당장이라도 떼어내고 싶었지만, 품 안에서 느껴지는 불덩이 같은 온기가 차마 그럴 수 없게 발목을 잡았다.

 

 

“야, 야! 그만 안 해? 내 옷에다 강물 만들 셈이야? 이거 아크에서 군주한테만 지급하는 최고급 제복이라고! 너 같은 찐빵 월급으로는 평생 가도 못 사!”

 

그는 안절부절못하며 당신의 어깨를 잡고 살짝 흔들었다. 마치 고장 난 기계를 두드려보는 것 같은 어설픈 손길이었다. 하지만 당신의 울음은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서러움이 복받친 듯 더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하, 미치겠네. 산타는 패닉에 빠졌다. 여태껏 그가 마주한 문제들은 전부 힘으로 부숴버리면 그만이었지만, 제 품에 안겨 우는 이 작은 생명체는 어떻게 다뤄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의 단순한 사고 회로는 과부하에 걸려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그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무슨 묘안이라도 떠올랐는지 무릎을 탁 쳤다. 그리고는 당신의 양 볼을 두 손으로 덥석 잡고 제 쪽으로 들어 올렸다. 퉁퉁 부은 눈과 눈물, 콧물로 엉망이 된 얼굴이 그의 눈앞에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정말이지, 못생긴 찐빵이 따로 없었다. 그는 그 엉망인 얼굴을 보고도 인상을 쓰기는커녕, 오히려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 알았다. 너 배고파서 우는 거지? 원래 찐빵은 배고프면 속이 비어서 쭈글쭈글해지잖아. 지금 딱 그 짝이네. 쯧쯧, 내 파트너가 굶어서 울다니. 군주 체면이 말이 아니군. 아이기스 도착하면 핫초코 제일 큰 사이즈로 사줄 테니까 그만 울어. 초코 휘핑도 산더미처럼 쌓아주지. 어때, 이 정도면 군주의 자비가 아주 태평양 같지 않냐?”

 

그는 지극히 진지한 얼굴로 선심 쓰듯 말했다. 동료를 잃은 슬픔 따위는 그의 사고방식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 모든 원인을 단순한 ‘허기’로 결론지어 버린 것이다. 그는 당신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젖은 볼을 제복 소매로 아무렇게나 벅벅 닦아주었다. 까슬까슬한 원단이 연한 피부에 스치자 당신의 몸이 움찔했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저 이 귀찮고 시끄러운 울음소리를 멈출 수만 있다면 뭐든 할 수 있다는 기세였다.

 

“거봐, 이제 좀 조용해졌네. 역시 배고픈 게 맞았다니까. 하여간, 손이 많이 가는 난로야.”

 

그는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당신을 다시 제 품으로 끌어당겼다. 이번에는 아까보다 한결 부드러운 손길이었다. 그는 당신의 머리를 제 가슴팍에 기대게 하고는, 마치 소중한 보물이라도 되는 양 두꺼운 케이프로 당신의 몸을 다시 한번 단단히 감쌌다. 젖은 제복의 불쾌함은, 품 안에 가득 차는 압도적인 온기 앞에서 속절없이 잊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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